다른 여인에겐 주지 마셔요**허난 설헌
我有一端綺,
拂拭光浚亂 對織雙鳳凰,
文章何燦爛 幾年疼中藏,
今朝持贈郞 不惜作君袴,
莫作他人裳
아름다운 비단 한필 곱게 지녀왔어요
먼지를 털어내면 맑은 윤이 났었죠 한쌍의 봉황새 마주 보게 수놓으니 반짝이는 무늬가 그 얼마나 아름답던지,
여러 해 장농 속?간직해 두었지만 오늘 아침 님 가시는 길에 드리옵니다
님의 바질 만드신다면 아깝지 않으나
다른 여인의 치마감으론 주지 마세요.
곱게 다듬은 황금으로 반달 모양 만든 노리개는 시집올 때 시부모님이 주신 거라서 붉은 비단 치마에 차고 다녔죠 오늘 길 떠나시는 님에게 드리오니 먼 길에 다니시며 정표로 보아 주세요 길가에 버리셔도 아깝지는 않지만 새로운 연인에게만은 달아 주지 마셔요 조선시대의 여인들은 이름이 없었다. 기생들에게나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은 노리개감으로불리워지기 위해서 붙여졌던 이름이엇을 뿐이다. 어렸을 때 간난이, 큰년이, 언년이 등의 아명으로 불렸지만 정작 족보에는 남편의 이름만 실려졌다. 말하자면 일생을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살다가 죽는 것이다. 게다가 삼종지도(三從之道) 칠거지악(七去之惡)때문에 여자는 죽을때까지 남자에게 매어지내야만 했다. 이처럼 비인간적인 시대에 살면서 떳덧하게 이름과 자, 그리고 호까지 지니고 살던 여자가 바로 허초희다. 그는 초희라는 이름외에도 경번(景樊)이라는 자를 가젖으며 난설헌이라는 호는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다른 여인들이 가지지 못했던 이름을 가졌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바로 불행의 시작이엇다. 이름을 가졌다는 것 자체가 남들로부터 자기 자신을 가려내는 행위이다. 그저 평범하게 살다가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죽어간 다른 여인들과는 달리, 스스로가 평범하기를 거부한 것이다. 그는 이땅위에서 겨우 스물일곱해를 살다가 갓지만 그 짦은 세월 속에서도 가장 뛰어났던 여자로서, 그리고 시인으로서의 삶을 살다가 간 것이다. 난설헌의 시가 정한의 눈물로 얼국지게 된 것은 김성립에게 시집간 뒤부터이다. 안동 김씨 집안인 시댁은 5대나 계속 문과에 급제한 문벌이었다. 김성립의 아버지 김첨과 허봉이 호당의 동창이었으며 각별히 사이가 좋았으므로 이들 사이에서 혼담이 이뤄졌다. 그러나 애초부터 김성립은 허초희와 짝이 될 수가 없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그는 얼굴이 못생겼으며 방탕성까지 있었다고 한다. 아마도 자기보다 너무나 뛰어난 난설헌에게자존심이 상하여 그처럼 빗나갔을 것이다. 게다가 과거 공를 한다고 해서 집에 붙어있지를 않았다. 강가 서당에서 글을 읽는 남편을 생각하면서 시를 지어 보냈다는 사실까지 비난하던 시대상황 속에서 그의 상상력은 자연히 신선세계에 노닐게 되었다. 그녀가 죽을 무렵에 이르러 친정이 몰락하기 시작했다. 아들과 딸이 어려서 죽고 뱃속의 아기까지 죽었으니 난설헌의 슬픔과 괴로움은 엎친데 덮친 셈이다. 이러한 자기 삶과 갈등을 표현한 것이 <난설헌집>에 실린 211편의 시이다. 난설헌은 죽으면서 자기의 시를 모두 불태워 버렸지만 아우 허균이 자기가 베껴놓은 것과 자기의 기억을 더듬어 엮어낸 것이다. (허경진 엮음 許蘭雪軒 詩選 머리말에서 ) (盈盈窓下蘭 枝葉何芬芳) / 하늘거리는 창가의 난초 가지와 잎 그리도 향그럽더니, (西風一被拂 零落悲秋霜) / 가을 바람 잎새에 한번 스치고 가자 슬프게도 찬 서리에 다 시들었네. (秀色縱凋悴 淸香終不死) / 빼어난 그 모습은 이울어져도 맑은 향기만은 끝내 죽지 않아, (感物傷我心 涕淚沾衣袂) / 그 모습 보면서 내 마음이 아파져 눈물이 흘러 옷소매를 적시네. – [감우(感遇)] 허난설헌 조선중기 천재 여류시인 위는 조선중기 대표적인 여류시인 허난설헌(1563~1589)의 시 [감우]이다. ‘감우’란 느낀 대로 노래한다는 의미이다. 허난설헌은 시 속에 나오는 난초같이 살다간 시인이었다. 그래서 그녀의 당호가 난설헌(蘭雪軒)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조선은 여성에 대해 그다지 우호적인 나라는 아니었다. 고려시대 비교적 분방하던 여성들의 삶은 가부장 중심의 가족관계를 중시하는 성리학적 이념체계 안에서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점차로 위축되었다. 여성들의 사회활동은 극히 제한적이었으며 대부분의 여성들은 집안을 지키고 후세를 낳아 기르는 역할만을 맡아 이것에 순응하며 살아야 했다. 그러한 속에서 여성이 자기 이름으로 시를 쓰고 이를 세상에 알린다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그러기에 남성 중심의 가치체계가 확고해지던 조선중기, 허난설헌이라는 여류시인의 등장과 그 삶의 궤적은 그녀의 천재성과 함께 당시 여성들의 고통을 극명하게 드러내준다. 허난설헌의 존재가 독특한 것은 그녀가 사대부가의 여인이었으며, 그녀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진 것이 당시 강조되던 현모양처로서의 부덕을 갖추었다거나 성공한 자식을 두었기 때문이 아니라, 올곧게 그녀가 창작한 시의 탁월함 때문이었다는 데 있다. 허난설헌은 왜곡된 형태이긴 하나 제한적으로 사회활동이 자유로워 문재를 뽐내는 것이 가능하던 황진이 같은 기생도 아니었고, 화가로서 탁월한 재능이 있었지만 율곡 이이 같은 훌륭한 자식을 길러낸 것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는 신사임당처럼 부덕을 상징하는 여인도 아니었다. 그녀는 오로지 자신의 시로서 그 이름을 남겼고 훗날 그녀의 시는 중국과 일본으로 건너가 많은 지식인 문인들에게 격찬을 받으며 오랫동안 애송되었다. 비교적 자유로운 가풍 속에서 성장 허난설헌은 조선중기 문신으로 동과 서로 사림들이 붕당된 후 동인의 영수가 된 허엽의 딸로 태어났다. 양천 허씨이며 어렸을 때 이름은 초희였다. 당시 여성들이 거의 제대로 된 이름을 가지지 못하였던 데 비해 허난설헌이 초희라는 어엿한 이름을 가진 것으로 볼 때 그녀의 집안은 당대 여타 사대부 가문에 비해 여성에게 관대하였던 것 같다. 허엽은 동인 중에서도 북인계에 가까운 인물로 북인들은 대개 그 사상적 기저가 성리학 이념 하나에만 고착되지 않고 여러 분야에 비교적 열려 있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허엽 가문의 학문에 대한 열린 가풍은 딸 허난설헌에게 남자와 똑같은 교육기회를 주었으며, 아들들에게는 자유로운 사상을 가질 기회를 마련해주었다. 당대 뛰어난 문인으로 평가받은 허성, 허봉이 허난설헌의 오빠이며 [홍길동전]으로 유명한 허균이 허난설헌의 남동생이다. 가족 중에서 허난설헌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친 사람은 둘째 오빠 하곡 허봉으로, 허봉은 여동생의 문재를 일찍이 알아보고 이를 독려하였다. 그는 자신의 친구이자 당대의 가장 뛰어난 시인 이달에게 여동생의 교육을 부탁하였다. 이달은 뛰어난 문학성을 가졌으나 양반가의 서자로 태어나 벼슬길이 막힌 불운한 시인이었다. 그는 당시풍(唐詩風)의 시를 잘 지어 선조 때의 삼당파 시인으로 이름을 떨쳤는데 허난설헌과 허균 남매를 가르쳐 그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어렸을 때부터 천재성을 드러낸 허난설헌은 나이 8세 때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이라는 한시를 지어 주변의 어른들을 놀라게 하였다. 시는 신선세계에 있는 상상의 궁궐인 광한전 백옥루의 상량식에 자신이 초대받아 그 상량문을 지은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었다. 이 시에서 어린 허난설헌은 현실의 어린이의 한계와 여성의 굴레를 모두 벗어버리고 가상의 신선세계에서 주인공이 되는 자신을 과감히 표현하여 신동이라는 칭송을 들었다. 이렇듯 허난설헌은 훗날 조선후기 문인 서포 김만중이 논하였듯이 가문과 스승의 격려 속에서 조선시대 규중의 유일한 여류 시인으로 성장하여 갔다. 불행한 결혼생활 허난설헌은 15세에 김성립과 결혼했다. 김성립은 안동 김씨로 그녀보다 한 살이 많았다. 김성립은 5대가 계속 문과에 급제한 명문 가문의 자제였다. 당시 사림들이 동인과 서인으로 붕당된 상황에서 동인은 또다시 북인과 남인으로 분리되기 시작하였는데 김성립은 남인계에 속한 인물이었다. 당시 남인은 북인보다 사상적으로 성리학에 더 고착되어 있었고 보수적이었다. 자유로운 가풍을 가진 친정에서 가부장적인 가문으로 시집 온 허난설헌은 시집살이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양반가의 여성에게조차도 글을 가르치지 않았던 당시의 분위기 속에서 시를 쓰는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는 달갑지 않는 존재였다. 허난설헌의 시어머니는 지식인 며느리를 이해하지 못했고 갈등의 골은 깊어갔다. 남편 김성립은 그런 그녀를 보듬어주기보다는 과거공부를 핑계 삼아 바깥으로 돌며 가정을 등한시하였다. 뛰어난 오빠와 남동생을 보고 성장한 허난설헌에게 평범한 김성립은 성에 차지 않는 인물이었을지도 모른다. 8세 때 이미 신동이라고 소문난 아내를 김성립은 버거워했다. 허난설헌의 남동생 허균은 훗날 자신의 매형인 김성립에 대해 “문리(文理)는 모자라도 능히 글을 짓는 자. 글을 읽으라고 하면 제대로 혀도 놀리지 못한다”고 평하였는데, 이 평에서 알 수 있듯이 김성립은 무뚝뚝하고 별다른 재기는 없는, 고집 세고 고지식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허난설헌은 결혼 초기에 바깥으로 도는 남편을 그리는 연문의 시를 짓기도 하였으나, 어느 순간 김성립과의 결혼에 회의를 느끼고 남성 중심 사회에 파문을 던지는 시를 짓기도 하였고, 때로는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신선의 세계를 동경하며 현실의 불행을 잊으려 하였다. 그러는 사이, 허난설헌의 친정은 아버지 허엽과 따르던 오빠 허봉의 잇따른 객사로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허난설헌은 두 명의 아이를 돌림병으로 잇달아 잃고 뱃속의 아이를 유산하는 불행을 당한다. 이때의 슬픔을 그녀는 [곡자]라는 시로 남겨놓았다.
哭子 (곡자)
去年喪愛女 (거년상애여) / 지난 해 사랑하는 딸을 잃고
今年喪愛子 (금년상애자) / 올해엔 아끼던 아들을 보내었네.
哀哀廣陵土 (애애광릉토) / 슬프고 슬프다, 이 광릉 땅에
雙墳相對起 (쌍분상대기) / 두 개의 무덤이 마주 서 있네.
肅肅白楊風 (숙숙백양풍) / 백양(白楊)나무 숲엔 쓸쓸히 바람 불고
鬼火明松楸 (귀화명송추) / 도깨비불은 송추(松楸)에서 번쩍인다.
紙錢招汝魂 (지전초여혼) / 지전(紙錢)으로 너의 혼을 부르고
玄酒奠汝丘 (현주전여구) / 현주(玄酒)를 너의 무덤에 뿌린다.
應知兄弟魂 (응지형제혼) / 응당 너희 남매의 혼은
夜夜相追遊 (야야상추유) / 밤마다 서로 좇으며 놀리라.
縱有腹中孩 (종유복중해) / 비록 뱃속에 아이가 있다한들
安可冀長成 (안가기장성) / 어찌 장성하기를 바랄 수 있으리.
浪吟黃臺詞 (낭음황대사) / 아무렇게나 황대사(黃臺詞) 읊으며
血泣悲呑聲 (혈읍비탄성) / 피눈물 흘리며 소리 낮춰 슬피 운다.
여성의 재능을 인정하지 않는 시어머니의 학대와 무능하고 통이 좁은 남편, 몰락하는 친정에 대한 안타까움, 잃어버린 아이들에 대한 슬픔 등으로 허난설헌은 건강을 잃고 점차 쇠약해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시로서 자신의 죽음을 예언했다. 碧海浸瑤海 푸른 바닷물이 구슬 바다에 스며들고 靑鸞倚彩鸞 푸른 난새는 채색 난새에게 기대었구나. 芙蓉三九朶 부용꽃 스물 일곱 송이가 붉게 떨어지니 紅墮月霜寒 달빛 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해라. 그 예언은 적중해 허난설헌은 부용꽃 스물 일곱 송이가 지듯이 27세의 나이로 목숨을 거두었다. 그녀의 남편 김성립은 허난설헌 사후 남양 홍씨와 재혼하였지만 곧이어 터진 임진왜란에서 의병으로 싸우다 전사하였다. 중국과 일본까지 알려진 허난설헌의 시 허난설헌은 죽을 때 유언으로 자신이 쓴 시를 모두 태우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녀가 남긴 시는 족히 방 한 칸 분량이 되었다고 한다. 허난설헌의 시집은 그녀의 유언에 따라 유작들을 모두 태웠다. 그러나 허난설헌의 동생 허균은 찬란한 천재성을 가진 누이의 작품들이 불꽃 속에 스러지는 것이 안타까워 그녀가 친정 집에 남겨놓고 간 시와 자신이 암송하는 시들을 모아 [난설헌집]을 펴냈다. 1606년 허균은 그 시집을 조선에 온 명나라 사신들에게 일람하게 하였다. 당시 명나라 사신 주지번은 허난설헌의 시를 보고 매우 경탄하였다. 그리고 이를 중국에 가져가 중국에서 [허난설헌집]을 발간하였다. 그녀의 시는 일약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되고 중국의 문인들이 앞을 다투어 그녀의 시를 격찬하게 되었다. 중국에서 애송되던 허난설헌의 시는 18세기에 가서 동래에 무역차 나온 일본인의 손에 의해 일본으로 전해졌다. 그녀의 시는 1711년 일본의 분다이야 지로[文台屋次郞]에 의해 간행되어 크게 인기를 끌었다. 난설헌의 시는 조선후기 사대부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재평가되어 그녀를 규방의 유일한 시인이자 뛰어난 천재로 인정하였다. 다만, 중국에서 발간된 그녀의 시들 속에 중국의 당시를 참고한 듯한 부분이 일부 발견되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허난설헌의 작품인가 하는 논란이 있기도 하였다. 그녀의 시집이 동생 허균에 의해 간행된 만큼 편집에 있어서 일부는 허균의 생각이 반영되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조선중기, 여성에게 가장 혹독했던 시기에 주옥같은 시를 남기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그녀의 뛰어남을 가릴 수는 없을 것이다. 허난설헌이 지은 시 1. 규원가 엊그제 젊었더니 하마 어이 다 늙거니 소년행락(少年行樂) 생각하니 일러도 속절없다 늙어야 섧은 말씀 하자하니 목이 멘다 부생모육(父生母育) 신고(辛苦)하여 이 내 몸 길러낼 제 공후배필(公侯配疋) 못바라도 군자호구(君子好逑) 원하더니 삼생(三生)의 원업(怨業)이요 월하(月下)의 연분(緣分)으로 장안(長安) 유협(遊俠) 경박자(輕薄子)를 꿈같이 만나 있어 당시에 용심하기 살얼음 디디는듯 삼오(三五) 이팔(二八) 겨우 지나 천연여질(天然麗質) 절로 이니 이 얼굴 이 태도로 백년기약(百年期約) 하였더니 연광(年光)이 훌홀하고 조물(造物)이 다시(多猜)하여 봄바람 가을달 베오리에 북 지나듯 설부화안(雪膚花顔) 어디 가고 면목가증(面目可憎) 되겠구나 내 얼굴 내 보거니 어느 님이 날 괼소냐 스스로 참괴(慘愧)하니 누구를 원망하리 삼삼오오(三三五五) 야유원(冶遊園)에 새 사람이 나단말가 꽃피고 날 저물때 정처없이 나가있어 백마금편(白馬金鞭)으로 어디 어디 머무는고 원근을 모르거니 소식이야 더욱 알랴 인연을 그쳤은들 생각이야 없을소냐 얼굴을 못보거든 그립기나 말으려믄 열 두때 길도길샤 서른 날 지리하다 옥창(玉窓)에 심은 매화 몇 번이나 피어 진고 겨울밤 차고 찬 제 자최눈 섞어 치고 여름날 길고 길 제 궂은 비는 무슨 일고 삼춘화류(三春花柳) 호시절(好時節)에 경물(景物)이 시름없다 가을 달 방에 들고 실솔이 상에 울 제 긴 한숨 지는 눈물 속절없이 헴만 많다 아마도 모진 목숨 죽기도 어려울사 도리어 풀쳐헤니 이리하여 어이하리 청등(淸燈)을 돋아 놓고 녹기금(綠綺琴) 빗겨 안아 접련화 한 곡조를 시름조차 섞어 타니 소상야우(瀟湘夜雨)에 댓소리 섯도는듯 화표천년(華表千年)의 별학이 우니는 듯 옥수(玉手)의 타는 수단 옛소리 있다마는 부용장(芙蓉帳) 적막하니 뉘 귀에 들릴소냐 간장(肝腸)이 구곡(九曲)하여 구비구비 끊쳤어라 차라리 잠이 들어 꿈에나 보려하니 바람에 지는 잎과 풀속에 우는 짐승 무슨 일 원수로서 잠조차 깨우는가 천상의 견우(牽牛) 직녀(織女) 은하수(銀河水) 막혔어도 칠월칠석(七月七夕) 일년 일도 실기(失期)치 아니커든 우리님 가신 후는 무슨 약수 가렸관데 오거나 가거나 소식조차 끊쳤는고 난간에 빗겨 서서 님 가신 데 바라보니 초로(草露)는 맺혀있고 모운(暮雲)이 지나갈 세 죽림(竹林) 푸른 곳에 새 소리 더욱 섧다 세상에 섧은 사랑 수없이 하려니와 박명(薄命)한 홍안(紅顔)이야 날 같은 이 또 있을까 아마도 이 님의 지위로 살동말동 하여라 허난설헌 / 사시사(四時詞) 뜨락이 고요한데 봄비에 살구꽃은 지고 / 목련꽃 핀 언덕에선 꾀꼬리가 우짖는다. 수실 늘인 장막에 찬 기운 스며들고 / 박산(博山) 향로에선 한 가닥 향 연기 오르누나. 잠에선 깨어난 미인은 다시 화장을 하고 / 향그런 허리띠엔 원앙이 수 놓였다. 겹발을 걷고 비취 이불을 갠 뒤 / 시름없이 은쟁(銀箏) 안고 봉황곡을 탄다. 금굴레[金靷] 안장 탄 임은 어디 가셨나요 / 정다운 앵무새는 창가에서 속삭인다. 풀섶에서 날던 나비는 뜨락으로 사라지더니 / 난간 밖 아지랑이 낀 꽃밭에서 춤을 춘다. 누구 집 연못가에서 피리소리 구성진가 / 밝은 달은 아름다운 금술잔에 떠 있는데. 시름 많은 사람만 홀로 잠 못 이루어 / 새벽에 일어나면 눈물 자욱만 가득하리라. <춘사(春詞)> 느티나무 그늘은 뜰에 깔리고 꽃그늘은 어두운데 / 대자리와 평상에 구슬 같은 집이 탁 틔었다. 새하얀 모시적삼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 부채를 부치니 비단 장막이 흔들린다. 계단의 석류꽃 피었다가 모두 다 지고 / 햇발이 추녀에 옮겨져 발 그림자 비꼈네. 대들보의 제비는 한낮이라 새끼 끌고 / 약초밭 울타리엔 인적 없어 벌이 모였네. 수 놓다가 지쳐 낮잠이 거듭 밀려와 / 꽃방석에 쓰러져 봉황비녀 떨구었다. 이마 위의 땀방울은 잠을 잔 흔적 / 꾀꼬리 소리는 강남(江南)꿈을 깨워 일으키네. 남쪽 연못의 벗들은 목란배 타고서 / 한 아름 연꽃 꺾어 나룻가로 돌아온다. 천천히 노를 저어 채련곡(埰漣曲)부르니 / 물결 사이로 쌍쌍이 흰 갈매기는 놀라 날으네. <하사(夏詞)> 비단 장막으로 찬 기운이 스며들고 새벽은 멀었지만 / 텅 빈 뜨락에 이슬 내려 구슬 병풍은 더욱 차갑다. 못 위의 연꽃은 시들어도 밤까지 향기 여전하고 / 우물가의 오동잎은 떨어져 그림자 없는 가을. 물시계 소리만 똑딱똑딱 서풍 타고 울리는데 / 발[簾] 밖에는 서리 내려 밤 벌레만 시끄럽구나. 베틀에 감긴 옷감 가위로 잘라낸 뒤 / 임 그리는 꿈을 깨니 비단 장막은 허전하다. 먼 길 나그네에게 부치려고 임의 옷을 재단하니 / 쓸쓸한 등불이 어두운 벽을 밝힐 뿐. 울음을 삼키며 편지 한 장 써 놓았는데 / 내일 아침 남쪽 동네로 전해 준다네. 옷과 편지 봉하고 뜨락에 나서니 / 반짝이는 은하수에 새벽별만 밝네. 차디찬 금침에서 뒤척이며 잠 못 이룰 때 / 지는 달이 정답게 내 방을 엿보네. <추사(秋詞)> 구리병 물소리 소리에 찬 밤은 기나길고 / 휘장에 달 비치나 원앙금침이 싸늘하다. 궁궐 까마귀는 두레박 소리에 놀라 흩어지고 / 동이 터오자 다락 창에 그림자 어리네. 발 앞에 시비(侍婢)가 길어온 금병에 물 쏟으니 / 대야의 찬물 껄끄러워도 분내는 향기롭다. 손들어 호호 불며 봄산을 그리는데 / 새장 앵무새만은 새벽 서리를 싫어하네. 남쪽 내 벗들이 웃으며 서로 말하길 / 고운 얼굴이 임 생각에 반쯤 여위었을 걸. 숯불 지핀 화로가 생황을 덮일 때 / 장막 밑에 둔 고아주를 봄술로 바치련다. 난간에 기대어 문득 변방의 임 그리니 / 말 타고 창 들며 청해(靑海) 물가를 달리겠지. 몰아치는 모래와 눈보라에 가죽옷 닳아졌을 테고 / 아마도 향그런 안방 생각하는 눈물에 수건 적시리라. <동사(冬詞)> <해설> ‘춘사’에서는 잠을 못 이루는 봄밤의 외로움을 하소연하고 있다. 앵무새가 정답게 속삭이고 나비가 꽃 속에서 춤을 추는 광경이며 구성진 피리소리는 임을 기다리는 쓸쓸한 심정을 나타낸다. 원앙새와 앵무새는 외로운 나와 대비되며 나비가 날아오르고 피리소리가 흩어지는 것은 흘리는 눈물과 대비된다. 서로 상치되는 심상은 작가의 외로운 심정을 드러낸다. ‘하사’에서는 한여름의 정경 속에서 임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사물을 세세하고 정겹게 묘사하는 시인의 관찰력이 돋보인다. 쓸쓸함, 외로움이라는 말을 하지 않고도 임에 대한 그리움을 꾀꼬리를 통해 작가의 처지를 대비시키며 나타내었다. ‘추사’에서는 다양한 심상을 드러내어 가을의 쓸쓸한 풍경을 그리면서 임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내었다. 임에게 보내는 편지와 함께 옷을 지어 부치려는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내는데 이러한 마음을 위로하는 것으로 달이라는 소재가 쓰였다 ‘동사’의 전반부에서는 궁중궁녀의 외로운 마음을 그렸으며 후반부에서는 규방여인의 고독을 그려냈다. 외로운 궁녀의 심사와 앵무새를 대비시키고 있다. 변방의 수자리 떠난 임을 그리는 규수의 고독도 그려진다. 誰識幽蘭淸又香 (수식유란청우향) / 그 누가 알리요 그윽한 난초의 푸르름과 향기 年年歲歲自芬芳 (년년세세자분방) / 세월이 흘러도 은은한 향기 변치 않는다네 莫言比蓮無人氣 (막언비련무인기) / 세상 사람들이 연꽃을 더 좋아한다 말하지 마오 一吐花心萬草王 (일토화심만초왕) / 꽃술 한번 터뜨리면 온갖 풀의 으뜸이오니 閨怨 (규원 / 여자의 한) 1) 錦帶羅裙積淚痕 (금대나군적) / 아롱다롱 치마폭 적신 이 눈물 一年芳草恨王孫 (일년방초한) / 모두 다 님 그리운 이별한이외다. 瑤箏彈盡江南曲 (옥쟁탄진강) / 거문고로 한가락 속 풀고 나니 雨打梨花晝掩門 (우타이화주) / 배꽃도 비에 지쳐 떨어집니다. 2) 月樓秋盡玉屛空 (월루추진옥병공) / 다락에 가을 깊어 울 안은 비고 霜打蘆洲下暮鴻 (상타로주하모홍) / 서리 쌓인 갈 밭을 기러기 앉네. 瑤瑟一彈人不見 (옥슬인탄인불견) / 거문고 한 곡조에 님 어데가고 藕花零落野塘中 (우화영란야당중) / 연꽃만 들못 위에 맥없이 지네. 채련곡(採蓮曲) 秋淨長湖碧玉流 (추정장호벽) / 가을 긴 호수에 옥 같은 물 흐르는데 荷花深處係蘭舟 (하화심처계) / 연꽃 깊은 곳에 목란배 매어 두고, 逢郞隔水投蓮子 (봉랑격수투) / 님을 만나 물 건너로 연밥을 던지다가 遙被人知半日羞 (요피인지반) / 남의 눈에 띄었을까 반나절 무안했네. 빈녀음 手把金剪刀 (수파금전도) / 가위로 싹둑싹둑 옷 마르노라면 夜寒十指直 (야한십지직) / 추운 밤에 열 손가락 곱아온다네. 爲人作嫁衣 (위인작가의) / 시집살이 길옷 밤낮이지만 年年還獨宿 (년년환독숙) / 이내 몸은 해마다 홀로 새우잠인가. 허난설헌의 시집을 읽다가 그녀를 불행하게 만든 못난 남편 그리고 그녀 앞에서 죽어간 어린 자식들 그녀의 삶이 오늘 새삼스럽다. 재주 많은 그녀의 삶을 묻어버린 역사를 생각하며 너무 짧았던 그러나 너무나 길게 고통스러워하던 쓸쓸함 그리움... 그녀의 삶을 애통해 한다. 차라리 길가에 버릴지언정 다른 여인에게는 주지 말라는 싯귀에 슬며시 웃음 지으며 그 애달픈 속내를 안타까워 해본다. 지나는 세월속에서 덧없음을 탓해보다가 400 여년만에 내 눈에, 내 마음에 닥아 온 그녀의 시를 읊는다. From The Evening Tide Till The Coming Dawn (그 저녁 무렵부터 새벽이 오기까지) / 슬기둥 |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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